Nursing /미국간호사 준비

미국간호사가 되기로 마음먹기 (1)

Gina, RN 2022. 11. 3. 14:47

 미국이란 나라에 관심도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영어가 싫었다.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다같이 영화를 보는데 친구 한 놈이 "와~ 영국 발음이랑 미국 발음이랑 정말 다르네." 라고 하는 걸 듣고 영어 잘한다고 뻐기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내가 진짜 신기하다. 오로지 자막만 봤던거다. 친구의 말을 듣고도 누가 영국발음이고 누가 미국발음인데? 하고 되물었을 정도로, 대답을 듣고도 잘 모를 정도로, 친구를 삐딱하게 생각할정도로 영어를 싫어했다,

 

 대학교때 남들 다 있는 공인영어점수 하나 제출하지 못하고, 점수 없는 애들 실력 확인하는 시험에서도 너무 못봐서 남들은 1학년 1학기 대학영어 수업을 들을 때 나는 기초영어를 들었다. 

그러다 호주에 1년 놀러 다녀왔고, 딱히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영어권 사람들(정확히 말하자면 호주는 또 약간 다르지만)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자, 영어 실력이 늘었다. 그래도 물론 여전히 기초도 없고 부족하다.

 

 다른 나라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그들의 삶이 좋아보였다. 그냥 단순하게, 한국에서 아둥바둥 살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 당시, 내 나이 23살, 대학교 2학년까지 수료한 상태였다. 심리학 복수전공한다고 간호학 싸이클에서 한 학기 빠지면서 일정이 꼬이고, 호주에 갔다오면서 1년 쉬었더니 나이가 많은 복학생언니가 되어있었다. (간호대 학생들은 휴학을 잘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취업노선이 잘 닦여있어서 그런지 학교 커리큘럼 그대로 따라서 바로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24살이면(20살에 입학하면) 바로 임상간호사가 된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거의 모든 간호학 수업을 영어로 진행했고, 시험도 영어로 보고, 영어 논문을 참고해서 과제를 해야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빡셌다. 성인간호, 정신간호, 통계 등 다 영어 수업이었다... 지긋지긋한 원서들(물론 거의 읽지 않은 듯 하다.). 그러면서 더욱 더 외국에 나가는 꿈을 키워나갔고, 대학원을 미국으로 가든, 다른 나라여도 상관없으니 꼭 해외에서 일 하는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각오를 더 다졌다. 한국 교육과정을 거치고 한국 면허증을 가지고 시도해 볼 수 있는 International nurse 길을 엄청 찾았다. 참고로 global leader.. enthusiastic.. e.. 지금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런 동아리도 애들이랑 만들었다. 스스로를 계속 그런 환경에 놓게 되고, 또 그러니 그런 쪽으로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 선순환.

 

 호주는 교육과정을 다 인정해주지 않아서, 학교를 더 다녀야했다. 패스. 영국은 공공의료라서 우리나라보다 근무환경 및 조건이 더 좋지 않다고 들었다. 또 패스. (지금은 어떤지 몰라요. 10년 전 이야기네요.) 싱가포르는 간호사 지위가 정말 낮고 돈도 많이 못 번댔다. 일본은 내가 일본어를 몰라서 패스. 여기저기 계속 알아봐도 미국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람들이 왜 그 많은 나라중에 미국으로 간거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제가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었어요."

 

 이 글을 혹시 읽고 있는 해외간호사를 꿈꾸는 간호학생님들, 아니면 3교대 근무에 찌들어있는 선생님들, 외국으로 가서 간호사로 일 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용기가 없는 선생님들 등등.. 이 계시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제 계기가 그럴듯한가요? 멋있나요? 원대한 꿈을 가진 야망있는 간호사로 보이나요? 

 

 목표가 흐릿하고, 흔들거리면 가는 길에 쉽게 넘어진다. 물론 내 얘기다. 딱 봐도 '안 가도 그만'인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지금의 나는 미국에 있다. 23살에 마음을 먹었고, 지금 32살의 나는 9년만에 꿈을 이뤘다. 사실 작년 3월에는 다 포기하고 싶어서 의료기기 회사 교육간호사 면접도 봤다. 거기 붙었으면 미국 안 왔을수도 있겠지.(끔찍) 근데 다행히 최종에서 떨어졌다.. 그 때 그 슬픈 마음을 어디다 털어놨냐면 미국간호사 카페였다. 마치 죄 짓고 교회가서 회개하듯.. 저 다 포기하고싶어서 회사 면접까지 봤는데 되지도 않았구요~ 다 때려치고싶습니다 진짜~~~ 이런 글을 남겼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때 댓글 하나,하나.. 포기하지 말라던 응원들.. 그 때 위로 해주셨던 선생님들 덕분에 다시 힘을 내서 준비했다. 

 

 횡설수설하는 느낌이지만, 요지가 무엇이냐면....

 

어떤 원대한 꿈이 없어도 괜찮다.

무논리여도 괜찮다. (어차피 미래의 내가 책임질거니까..!!?!??!?!)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에게 내 선택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미국(혹은 다른나라)에 가고싶어졌다. 마음을 먹었다? 그럼 가면 된다. 준비하면 된다. 엄청난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을 먹었으면 입 밖으로 내뱉고 준비하고, 스스로를 그것과 관련된 환경에 놓고, 중간에 넘어지고 포기하려다가도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옆에 두고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사실,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간호사들의 대다수는 정말 많은 일이 생기는 20대-30대다. 갑자기 영혼의 동반자가 생길수도, 가치관의 변화로 한국이 너무 좋아질수도, 또 다른 좋은 기회가 갑자기 올 수도 있다. 포기해도 괜찮다. 매몰비용을 잊고 살 수 있다면!!

 

 나도 살짝쿵 결혼을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결혼 후 몇 년 지나서 삶이 힘들 때(분명 뭐 때문이건 힘든 날이 오겠지), '그 때 결혼 안 하고 미국에 갔으면...' 하면서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어느정도일까? 그 때의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이고.

 

- 미국 간호사가 되고 싶은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너무 좋다. 그대로 가면 된다.

- 그런 목표가 없고 단순하게, 뿌옇게, 막연하게 되고싶으면, 그것도 괜찮다. 계속 알아보고 공부하다보면 목표가 생길 수도 있고, 아니면 막연했던 상상과는 달라서 접고싶을 수도 있다.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일단 준비를 시작해야한다. 

- 포기와 지속, 양갈래 길이 왔을 때 정확하게 내가 내 삶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줄 사람을 주변에 둔다. (카페, 블로그 등의 넷상 인맥들도 다 괜찮다.)

 

천천히 가도 된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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